중국 4대 미녀 중 하나로 손꼽히는 양귀비는
10cm도 안되는 작은 발의 소유자였다고 한다.
양귀비의 발은 걸음걸이가 뒤뚱뒤뚱 거릴 정도로 작았고
발이 당 현종의 혀 안에서 놀 정도였다고 전해진다.
남당(南唐)의 군주 이후주(李後主)가 자기가 사랑하던 비빈 요랑(窅娘)의 두 발을
하얀 비단으로 둘둘 말아
초승달같이 만든 후 금련대에서 춤을 추도록 한 데서 시작되었다고 한다.
처음엔 방탕한 왕족의 놀이였지만, 가냘픔을 아름다움으로 여겼던 송(宋) 나라 때부터 유행하기 시작해,
전족은 남자들의 사랑을 받으면서 1,000년에 가깝게 유행되었다.
청나라에 이르러 만주족이 한족 여자들을 중심으로 한 전족 풍습을 금지시켰으나,
줄어들기는커녕 한족뿐 아니라 만주족의 여자들까지 전족의 유행에 휩싸였다고 한다.
처음엔 기생들이 전족을 하기 시작했는데, 점차 귀족의 부녀자들이 남자들의 판타지에 부응해서
사랑을 차지하기 위해 발을 동여매는 유행을 만들며, 전족은 오랫동안 ‘있는 집안 부녀의 상징’이었기에
더더욱 그 유행은 오래도록 전승되었다.
전족은 처음엔 다 자란 여자의 발을 묶는 것이었지만 점점 더 작은 발에 대한 판타지로 발전해
여자아이가 3, 4살이 되면 무명천으로 꽁꽁 발을 동여매어 더 자라지 못하도록 하는 것으로 변했다.
전족은 어른 손바닥의 절반 정도 크기였다.
전족은 여자의 성기 못지않게 은밀한 남편의 전유물이었는데 포동 포동 함(요염함),
부드러움(여성적), 섬세함(세련됨)을 전족의 세 가지 아름다움으로 쳤다.
이 작은 발을 만들려면 여아는 한 동이의 눈물을 쏟아야 한다는 말이 있을 만큼 고통의 산물이었다.
엄지발가락을 제외한 네 개의 발가락을 안쪽으로 구부려서 너비가 5㎝,
길이가 3m 정도의 목면으로 친친 꼭 감싼다.
어느 정도 시기가 지나서 전족의 발 모양이 만들어지면 전족용 신발을 신긴다.
전족을 하면 걷기가 어려워서 자연히 운동량이 줄게 되고, 발은 부드럽고, 아기살처럼 부드럽게 된다.
중국의 남자들은 발바닥의 갈라진 부드러운 틈을 너무나 섹시한 곳, 여자의 음문이라 여겼다.
전족을 하면 여자들은 혼자 걸을 수가 없어서 곁에서 누군가가 부축해야 하며
마치 발뒤꿈치를 들고 걷는 것처럼 살랑살랑 걸어야 했다.
이처럼 전족을 한 여자는 빨리 걸을 수도 없어서 여자가 귀한 중국에서
여자들을 도망가지 못하게 하려고 시켰다는 말도 있지만,
실은 조그만 발로 커다란 몸을 지탱하며 종종 걸어야 했기에 엉덩이와 허벅지,
음부의 괄약근 운동이 되어 남자에게
커다란 쾌감을 준다는 속설이 더욱 설득력이 있다.
어쨌거나 전족을 한 여자들과 즐기는 남자들은 전족한 발의 향기를 맡고,
입에 넣어 빨고 핥는데 만족하지 않고, 그 갈라진 틈에 아몬드를 넣어 씹거나,
자신의 음경을 애무하는 등 그들의 성적 판타지를 발전시켰다.
심지어 한때 한량들에겐 삼촌금련[三寸金蓮]이라 하여
연인의 전족 신발에 술을 부어 마시는 것을 풍류로 알기도 했다니
남자들의 절대 후각과 미각조차 마비시킨 성적 취향과 유행의 위력은 참으로 놀랄 만하다.
현대에는 어떨까?
남자들의 미적 안목 때문에, 혹은 능력을 가진 남자에게 성적으로 선택되기 위해,
여자들은 여전히 굶고, 얼굴이며 몸을 뜯어고친다.
심지어 이쁜이 수술, 양귀비 수술, 소음순 성형 수술 등 자의적인 성기 훼손까지 서슴지 않는다.
하지만 그에 비한다면 괄약근 운동은 너무도 쉬운 노력이 되지 않을까?
복잡하지 않고 인증된 [의료기기 제조품목허가번호 : 제 허 14-111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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괄약근 운동을 한다면 굳이 뒤뚱뒤뚱 걷지 않고도 충분히 괄약근 단련을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