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기능향상

음경의 길이가 한자 다섯 치... 지대로 지증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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王以永元二年庚辰卽位.[或云辛巳則三年也.]
왕은 영원 2년[500년]에 왕위에 올랐다.​

王陰長一尺五寸. 難於嘉耦.
왕은 음경의 길이가 한자 다섯 치가 되어
배필을 구하기가 힘들었다.

發使三道求之. 使至牟梁部冬老樹下.
사자를 삼도에 보내어 배필을 구했는데
사자가 모량부 동로 수 아래에 이르니 ​

見二狗嚙一屎塊如鼓大. 爭嚙其兩端.
개 두 마리가 북만큼 큰 똥 덩어리
하나를 물고 있는 것을 보았는데
개들은 양 끝을 물고 싸웠다.

訪於里人. 有一小女告云.
마을 사람들에게 물어보니 한 소녀가 말했다.

此部相公之女子洗澣于此. 隱林而所遺也.
이것은 모량부 상공의 딸이 빨래를 하다가
숲속에 숨어서 보고 간 것입니다.

尋其家檢之. 身長七尺五寸.
사자가 그 집을 찾아가 보니 그녀의 키가
일곱 자 다섯 치나 되었다.​

具事奏聞. 王遣車邀入宮中.
이 사실을 왕께 아뢰니 왕은 수레를 보내
그녀를 궁중으로 불러들여

​封爲皇后. 群臣皆賀.
책봉하여 황후로 하니 여러 신하들이
모두 경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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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유사 지철로왕]

『삼국유사』‘ 지철로왕조(智哲老王條)에 성[性]과 관련한
신라인들의 생각을 찾아볼 수 있다.
지철로왕 즉 지증왕은 순장 법을 금하고 농사를 장려하였으며, 소를 길러 땅을 갈게 하였다.
국호를 신라로 정하고, 마립간 대신 중국식 군주의 칭호인 왕의 칭호를 사용하였다.
제도와 체제를 개편, 정비하여 상복법을 제정하였으며,
주, 군, 현을 정하고 각 주에 군주를 두었다.
서울에 동시(東市)를 두었고, 우산국(울릉도)을 정복하였다.
또한 한국의 고대 사회에서부터 전해지던 순장 풍습을 최초로
폐지한 군주이기도 하다.
시호는 지증인데, 신라 최초의 시호이기도 하다.
이름은 지대로(智大路, 智度路)이다.
무려 64세에 왕위에 올랐다 하고 78세까지 장수하여
지금 시대의 기준으로도 충분히 천수를 누린 왕이다.


그의 음경의 길이는 무려 1자 5치[약 27cm]나 되었는데,
음경이 너무 큰 관계로 마땅한 신붓감을 구하기가 어려웠다.


[실제로 현대에도 40cm에 달하는 성기를 가진 인물이 너무 커서
성관계를 한 번도 하지 못했다는 사례가 있기는 하다.]
[이 탓에 처녀들은 사랑을 나누려 하면 너무 아파 울면서 도망 갔다고 한다.]

그래서 지증왕은 각 지방에 사자를 보내 자기의 음경을 능히
감당할 만한 처녀를 수소문하였다.
어느 날 지증왕이 보낸 한 사자가 모량부에 도착해 동로 수(冬老樹) 아래에 쉬고 있는데,
큰 개 2마리가 북 만한 누런 똥[농업 생산력의 강화를 의미한다는 해석 있음]을
양쪽에서 물고 으르렁거리고 있었다.
이것을 본 사자는 쾌재를 부르며 마을로 내려가
그 커다란 똥 덩어리의 주인이 누구냐고 물었다.
그러자 한 소녀가 말했다.
"아, 그거요? 그것은 모량부 상공의 딸이 빨래를 하다 숲속에 숨어서 눈 똥입니다."
사자가 그 집을 찾아가 소녀가 말한 처녀를 보니 정말로 키가 큰 여자였다.
보니
키가 7자 5치[약 225cm]나 되었다.
사자는 급히 지증왕에게 그 처녀를 소개했고, 지증왕은 수레를 보내
궁중으로 불러 왕비로 삼았다.
이처럼 왕의 성기가 크다는 사실을 숨기지 않고 기록한 것은
이것이 곧 생명력을 상징하기 때문이다.
여기에서 거대한 남근과 거대한 여성의 성기는 거대한 생산성을 의미한다.
게다가 여근과 남근이 합치되었다는 것은 곧 생산성 증대와 풍요를 의미한다.
무엇보다도 지철로왕, 즉 지증왕과 관련해서 이와 같은 기록이 작성된 이유는
무엇인가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삼국유사에 담긴 기록이지만 약 27cm가 되는 성기로 정상적인 성관계는
물론 거동마저 불가능하지 않았을까 한다.
역사학자들은 지증왕의 성기의 크기는 바로 당시 강력했던 왕권과
결부시킬 수 있다고 주장한다.
지증왕의 어마어마한 업적과 강화된 권력을 표현하기 위한 설화로
해석할 수 있지 않을까?
지증왕으로선 신라인들이 가장 숭상했던
'성의 능력'을 과시해서라도
위상을 높여야 하는 절박한 사정이 있지 않을까?
이것은 너무나 신라적이면서 독특한 내용으로 고대사회의
성적 개방성을 배울 수 있는 얘기로 전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