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헌자료뿐만 아니라 고고학적 유물을 통해서도
당시 사람들의 성관념을 이해하는데 보탬을 준다.
그 대표적인 예로 신라의 토우가 있다.
흥미롭게도 이들 토우는 대개 5세기경에 만들어진 것이다.
5세기는 왕이라는 명칭보다는 마립간이라는
칭호가 사용되던 시기다.
이것은 매우 주목되는 시점이라고 할 수 있는데,
중국의 정치적·문화적 영향을 직접적으로 받기 이전의
신라시대이기 때문이다.
이들 토우는 다양한 형상물을 보여준다.
예컨대 기마 인물상을 비롯하여 악기를 연주하는 모습,
그리고 배를 타고 노를 젓는 모습,
수렵하는 모습, 그리고 다양한 동물들을 형상화한
것들이 그러하다.
이런 내용 중에서도 흥미로운 것이 바로 성기를
노출하여 부각 시키거나 성교를 하는 모습들이다.
국보 195호로 지정된 토우 부토기(土偶附土器)를
보면 여자가 엉덩이를 들고 남자가 성기를 들이대는
모습이 표현되어 있다.
이들 인물의 표현은 너무나 단순한데 비해서 성기의
표현만은 매우 적나라하다.
또한 남성이나 여성을 표현한 토우들도
성기만은 거대하게 묘사되어 있다.
배를 젓는 사공의 경우에도 남성기가 우람하게 표현되어 있다.
과연 이러한 이유는 무엇인가?
과거에는 이들 토우가 신라시대의 문란했던 성풍속을
보여주는 것이 아닌가 의구심을 갖기도 했다.
하지만 그런 양상보다는 어떤 목적을 갖고 이들 토우가
형상화된 것으로 보는 것이 합당하다.
무엇보다도 이들 토우는 부장품으로 출토되었기 때문에
단순한 성적 오락물로 설명하기에는 어렵다.
부장품이라는 장치는 죽은 자의 사후세계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즉 사후세계에서도 현세와 마찬가지로 부를 누리고
자손 발복을 기원하고자 한 것이다.
강력한 성기의 표현은 생산력의 확대를 의미한다.
성기 바위들이 지닌 강력한 힘과 영원한 지속성과 마찬가지로,
이들 토우에 나타난 성기의 표현도 동일한 의미 부여가 가능하다.
그런 관점에서 이들 토우의 성격은 성을 생명의 근원이라고
파악하고 있으며, 이를 통해서 당시의 성기숭배 사상으로 엿볼 수 있다.
또한 1976년 경주 안압지 발굴 때 소나무로 만든 남근이
4점이나 출토되었는데, 이 역시 삼국시대와 통일신라시대
사람들의 성문화와 성관념을 밝혀주는 자료가 된다.